[Interview] 계단 올라가는 로봇, 왜 만들었냐고요?

"로봇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 연구의 가치를 설명해야 한다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제가 지금 공익근무를 하는 곳이 장애인들이 있는 특수학교거든요. 이 안에 있으면 바퀴로 움직이는 기구의 한계를 정말 절실히 느끼게 돼요. 가령 휠체어는 계단을 만나면 무용지물이에요. 그러나 앞으로 저희가 고안한 기술을 발전시켜서 휠체어에 적용하면 엘리베이터나 전동 리프트 없이도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해줄 수 있게 되죠."

눈을 맞추고 손짓을 써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남자가 문득 본인의 모습이 민망했는지 머리를 긁으며 "인턴을 하기 전에는 저도 하지 못했었던 생각"이라고 겸손함을 덧붙였다. 긴장한 얼굴로 함께 앉아있던 남자 셋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내어 웃는다. 네이버랩스 Robotics팀 2기 인턴인 권욱진, 나종욱, 김형근, 최종욱님이다.

이들은 지난 15일 로보틱스 분야 국제학회의 양대 산맥 중 하나로 꼽히는 IROS에서 논문 발표를 승인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학 졸업장이 없는 학부생들이 쓴 논문이 정상급 국제학회에 승인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특히 IROS는 로봇 연구자들의 경쟁이 매우 치열하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대학교수들도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로봇 연구자들의 SNS에서도 이들의 소식이 화제가 됐다.

4명이 쓴 논문의 제목은 'Design Analysis of TuskBot: Universal Stair Climbing 4-Wheel Indoor Robot'이다. 바퀴로 이동하는 로봇에 어떤 설계를 첨가하면 임의의 계단을 만났을 때 문제없이 오르게 만들 수 있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했다. 인간과 같은 실내 공간을 공유하는 로봇들의 본격적인 상용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연구 중 하나다.

이들은 네이버랩스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계단을 등반하는 각기 다른 콘셉트의 로봇 10개를 직접 제작했다. 그리고 좋은 성능을 보인 로봇들을 골라 단계별로 논문을 썼다. 이번에 IROS에 등록된 논문은 그중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성능을 지닌 로봇에 대한 이야기다.

6개월간의 인턴 생활 후 이들에게는 3편의 논문과 국내·국제 로봇학회에서의 발표 경험이 남았다. 아직 등록되진 않았지만 논문 내용과 관련된 국내 특허 1개도 출원 중이다. 이들은 소감을 묻자 "사실 실감이 잘 안 난다"라고 말했다. 네이버랩스 인턴생활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6월 23일 경기도 분당 그린팩토리 6층에서 4명의 남자를 만났다.

네이버랩스 Robotics팀 2기 인턴 권욱진(오른쪽 앞), 나종욱(오른쪽 뒤), 최종훈(왼쪽 앞), 김형근(왼쪽 뒤)

Q. 어떻게 이 로봇을 연구하게 되었나요?

(욱진) Robotics팀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의 연구를 해요. 시니어, 주니어 연구원들은 새롭고 도전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많이 하고, 저희 같은 인턴들은 이미 알려져 있는 기존의 연구 방법 중 잘 된다고 알려진 것들을 그대로 따라가보면서 정말 괜찮은 방법인지, 더 개선할 여지는 없는지를 확인하는 식으로 연구하죠.
(종욱) 입사 첫날 들어갔더니 일종의 미션처럼 이 문제가 인턴들에게 던져져 있었어요. '바퀴가 달린 로봇이 계단을 올라가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물음이요. 물론 '쉬림프(shrimp)' 구조와 '로커-보기(Rocker-Bogie) 구조라는 힌트도 함께 주어지긴 했지만 막막했죠.

Q. 막막함 속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뭐였나요?

(형근) 문헌 조사요. 영어로 된 논문들을 뒤져봤더니 정말 제대로 계단을 올라가는 로봇은 없더라고요. '쉬림프 구조로 만들면 실제로 (계단을) 올라간다'는 논문이 있긴 했는데 특정한 조건의 계단만을 올라가는 내용이었어요. 크게 의미가 없었죠.
(종욱) 같이 자료조사를 했었는데, 일단 뭔가 뚜렷한 정답이 없으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아. 이건 어차피 삽질 없이 만들 수 없는 미션이다.(웃음)
(종훈) 저는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일단 뭐든 하고 보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일단 그날부터 3일에 걸쳐서 로커-보기 구조로 로봇을 하나 설계해봤죠. 로커-보기 구조는 화성 탐사 로버 같은 험지 돌파용 머신에 쓰이는 메커니즘이에요.

Q. 험지 돌파용 머신에 쓰이는 구조니까 그걸로 계단 올라가기도 쉽겠다고 봤군요?

(종훈) 네. 처음에는 바퀴 8개짜리, 그다음은 6개짜리를 만들었어요. 설계만 한게 아니라 스티로폼으로 로봇 시제품도 만들어서 실험해봤는데 둘 다 보기좋게 실패했죠.(웃음)

Q. 힌트도 안 통했으니 점점 더 막막해졌겠네요?

(종욱) 네. 그때부터 저희가 궁여지책으로 이것저것 각자의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죠.
(형근) 대부분은 칠판에서 사장됐지만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어요. 가령 바퀴에서 바퀴살만 남겨서 타닥타닥 회전하며 바닥을 때리는 느낌으로 계단을 올라간다던가.
(종훈) 탱크에 쓰이는 캐터필러 구조 안에 액체를 채워서 약간 물컹거리는 젤리 몬스터 느낌으로 오르는 것도 구상했었고...
(형근) 쉬림프 구조로도 결국 로봇을 만들었었죠.
(욱진) 한 3개월 정도는 저희 내부에서 엄청 균열이 심했어요. 오만가지 아이디어가 다 쏟아지니까. 서로 자기 아이디어가 맞다고 하고.(웃음)
(종욱) 그때 제가 느낀 게. 인턴 네 명도 이렇게 의견 통일하기 어려운데 대형 회사에서 하나의 로봇을 만들기는 정말 어려웠겠구나 싶었죠.

Q. 어디서 단서를 찾았나요?

(욱진) 우연히 제가 제 실수를 찾았어요. 원래 로봇이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역학 계산을 해서 힘이 필요한 곳에 그만큼의 힘을 주게끔 설계해야 해요. 이 계산을 제가 도맡아 했었는데 어느날 보니 가장 처음에 만들었던 로커-보기 로봇에서 계산이 틀렸더라고요. 동료들한테 고백했죠. '얘들아 이거 다시 해보면 될 거같다'.(웃음)
(종욱) 그리고 저희들끼리 방향 못 잡고 방황하는 과정에서 종훈님이 '터스크 구조(Tusk)'라는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 냈어요.

Q. '터스크 구조(Tusk)'가 뭔가요?

(종훈) 로봇의 앞부분에 대각선 방향으로 난 뿔 같은 걸 다는 거예요. 보통 바퀴 달린 기계는 계단의 수직 벽과 직각으로 만나잖아요? 그럼 계단을 올라갈 수 없으니까 그 각도를 비스듬하게, 바퀴가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접근각을 만들어주는거에요.

Q. 그랬더니 되던가요?

(욱진) 네. 진짜 거짓말처럼 됐어요. 바퀴 여섯 개 짜리 로봇이 계단을 씩씩하게 올라갔죠. 여기까지 3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종욱) 그날이 정확하게 빼빼로 데이였죠. 2016년 11월 11일요. 저희 넷 다 빼빼로는 못 받았는데 로봇이 계단을 올라가니까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Q. 그 뒤로는 연구가 탄력을 좀 받았겠어요.

(종욱) 저희가 3개월 동안 배운 게 두 가지였어요. 우선, 접근각을 만들어주는 터스크 구조는 이 미션을 해결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그리고 계단 올라갈 때는 여러 개의 바퀴 중에 가장 아래 처져있는 뒷바퀴의 동력 전달이 가장 중요하다. 그 후로 여러가지 변수를 조금씩 주면서 이 두 가지를 가장 잘 만족하는 구조를 찾기 시작했죠.
(종훈) 아마 거기서 멈췄으면 해외 학회에 논문 낼 수준이 아니었을텐데 저희가 그때는 굉장히 신이 나 있을 때라. 금방 개선점을 찾았어요.

Q. 어떻게 개선했나요?

(욱진) 로봇이 계단을 올라가는 걸 유심히 관찰했어요. 그런데 올라가는 과정에서 맨 앞에 있는 바퀴가 공중에 붕 떠있어서 거의 역할을 못 하더라고요.
(종훈) 그래서 앞 바퀴 두 개를 없애버렸어요. 제가 평소 신조가 '단순한 게 최고'라는 거여서.(웃음)
(욱진) 그래서 깔끔하게 바퀴 4개로 계단을 올라가는 로봇을 만들어서 성공했죠. 그런데 이게 잘 되니까 저희 네명 다 '네이버랩스 계단 말고 다른 계단들도 올라가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생각을 하고있는 거에요.
(종욱) 사람 욕심이 끝이 없어.(웃음)
(형근) 계단이 보면 매끈하게 90도 각도로 다듬어진 계단도 있지만 어떤 계단은 턱이 있기도 하고 수직면이 없이 수평면만 있는 계단도 있잖아요. 다 우리 실생활에서 접하는 계단들인데 어떤 건 올라가고 어떤 건 못올라가면 결국 실용성이 크게 떨어지잖아요.
(종훈) 우리가 쓰는 계단을 로봇에게 맞출수도 없는거고.(웃음)
(형근) 그래서 저희는 이걸 다 올라갈 수 있는 로봇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Q. 어려운 문제네요.

(종훈) 저희가 최종적으로 찾은 해답은 로봇 앞쪽에 카메라를 달고 그걸로 계단의 수평 길이, 수직 길이를 측정하는 거에요. 그리고 몸통에는 계단 측정값에 맞춰 최적화된 길이로 길어질 수 있는 장치를 다는 거죠. 그러니까 계단 크기에 맞춰서 변신을 하는 콘셉트의 로봇이 나오게 됐죠.
(욱진) 저희 생각에는 아마도 이 부분이 IROS에 논문 승인이 된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이 로봇은 문제 해결능력이 매우 뛰어나요. 나선계단 말고는 임의의 모든 계단을 다 올라갈 수 있거든요.
(형근) 뒷바퀴 앞쪽에 캐터필러를 추가한 로봇도 성능이 좋았어요. 시간상 문제로 직접 만들지는 못했는데 저희 연구에 따르면 계단 크기에 따라 몸통이 변화하면서 뒷바퀴 앞쪽에 캐터필러가 달린 로봇이 아마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완전체라고 할 수 있겠죠.

뒷바퀴 앞에 캐터필러를 추가한 로봇 'Wheel-Track Hybrid Approach'

Q. 대학 졸업도 전에 IROS에 논문이 등재됐는데 주변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종훈) 일단 주변 분들이 IROS에 대해 잘 모르세요.
(종욱) 저는 너무 기뻐서 할머니께 자랑했는데 엄청 좋아하시면서 '그런데 아이로스가 무슨 회사니?'하시더라고요.(웃음)
(욱진) 사실 이게 로봇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큰일인데. 같이 좋아할 사람이 없죠.(웃음)
(형근) 기분이 좋은데 주변에 같이 기분 낼 사람이 없어서 저는 B햄버거 프랜차이즈에 갔어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제일 큰 햄버거 세트를 시켜 먹었어요.(웃음)

Q. 이 로봇을 만드는데 네이버랩스 인턴 활동이 좀 도움이 됐나요?

(욱진) 정말 큰 도움이 됐죠. 로봇 만드는데 돈이 굉장히 많이 들어요. 저희가 이 컨셉, 저 컨셉 로봇을 만들어보면서 답을 찾았던 것도 네이버랩스에서 모든 환경을 지원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죠.
(종욱) 저희가 둘은 서울대, 둘은 카이스트 재학 중인데 사실 학교에서는 로봇에 관심이 많아도 이런 수준의 실습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요. 그런데 로봇을 직접 만들어보니까, 이건 해보는 만큼 실력이 늘어나는 분야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운이 좋았죠.
(형근) 저는 이 분위기가 정말 좋았던 게. 연구원들이 저희가 뭔가 삽질을 하면 그걸 계속 독려해줘요. 더 해보라고.(웃음) 실패하고 그래도 눈치 주는 것도 없고.
(종욱) 학교 다닐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인턴 끝나고 학교에 오니까 수업이 무척 쉬워졌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왜 그럴 때 있잖아요. 분명히 예전에는 이해 안되던게 갑자기 어느 날 쉽게 이해되는 경험. 그래서 뜬금없이 Robotics 연구원 분들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낸적도 있어요.(웃음)

Q. 연구원들과 소통이 많은 편이었나요?

(종훈) 네. 저희 작업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여기는 로봇 제작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를 커버하는 시니어 연구원들이 있어요. 바로 옆자리에서 함께 일하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죠.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감사한 일인게. 저희는 기간을 정해놓고 인턴을 하는 거지만 그분들은 직업이잖아요. 한참 몰두하고 있는데 저희가 불쑥 고민 상담을 하면, 저 같으면 약간은 귀찮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연구에 방해를 받으니까.(웃음) 그런데 그런 거 없이 항상 저희 눈높이에 맞는 조언을 주셨어요.
(형근) 한번은 저희가 만든 프로토 타입 모터 몇 개가 이상하게 뻑뻑해지면서 오작동을 하는 날이 있었어요. 그래서 넷이 하루종일 그걸로 고민하다가 결국 이유를 못 찾고 '모터 고장났다'고 결론을 냈어요. 그리고 저녁을 먹으면서 연구원들과 그 일로 대화를 하는데, 한 분이 모터를 보시지도 않고 '모터 조립상태를 확인해봤느냐'고 하시더군요. 밥먹고 확인해보니 모터의 조립 나사 중 하나가 풀려 있었어요. 이런 에피소드들이 꽤 있었습니다.

Q. 인턴 하기 전과 인턴 한 후 스스로 로봇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있었나요?

(종훈) 저는 전공이 기계과인데. 예전에는 진성 기계과스러운 사고방식이 있었어요. 로봇 구조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설계할 때도 이게 부러질까 안 부러질까 중심으로.(웃음) 그런데 인턴 끝나고 나서는 코딩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로봇 제어를 잘 하려면 코딩을 잘 해야 하니까.
(형근) 저는 반대인데. 원래 코딩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을 많이 공부했었어요. 그런데 네이버랩스 연구원들 일하는 걸 보면서 설계 같은 부분들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됐죠.
(욱진) 저는 예전부터 교수가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번 인턴 경험을 통해 회사도 무척 재밌는 곳이라는 걸 알았어요. 생각이 좀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로봇은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학교에서 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한 분야인 것 같아요. 박사 학위를 받고 회사를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종욱) 저는 하고 싶은 게 좀 막연했던 편인데. 네이버랩스에서 하드웨어 만드는 걸 해본 이후로는 로봇 쪽으로 확신을 갖게 됐어요. 로봇이라는 게 이렇게 재밌다는 맛을 봤다고 할까요.(웃음)

계단 조건에 맞춰 변신이 가능한 로봇 'Length-Adaptable Platform Appro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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